얼마 전에 말이 헛나와서 ‘부처님 오신 날’을 ‘부처님 오시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한 글자 차이인데 그 뜻이 완전히 달라지죠. 부처님이 이미 다녀간 게 아니라 그날 정말로 오신다면 참 기쁠텐데요. 에디터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사찰을 만날 때마다 발걸음이 느릿해져 여유로웠고, 바람 속 풍경이 근사해 늘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부처와 같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 극락일 테니, 마중하러 가볼까요?
:: 에디터 나비가 추천하는 사찰 3
눈부셨던 청춘의 한 페이지👭
:: 경북 영주 부석사
이 세상 난 지 스물 몇 해였던 어느 겨울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여행을 떠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영주 부석사를 처음 갔습니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날 저는 빨간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충동적으로 자른 앞머리는 유난히 짧았습니다. 밤 기차를 탔던 터라 부석사에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해가 오르고 있었죠. 그 유명한 책의 제목처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소백산맥 능선이 태양 빛에 밝아지는 모양을 찬찬히 지켜보았습니다.
“아침공양 하실래요?” 아주머니 한 분이 코끝이 빨개진 저희에게 물었습니다. 영주도, 사찰 여행도 처음이었던 저희는 수줍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무량수전 아래 범종각에서 화려하게 칠한 목어를 쓰다듬고 내려와, 눈 쌓인 은행나무길에서 환히 웃으며 사진을 남겼습니다. 아주 오랜 뒤 여행기자가 되어 부석사를 다시 찾았을 때, 눈물나게 커버린 저를 보았습니다. 이제는 출입금지 팻말이 놓여 쓰다듬을 수 없는 목어를 건너보며 “아침공양 하실래요?” 물어봐 준 보살님의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 뜻인지, 이제는 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GoGo늦가을 부석사 일원에서는 영주사과축제(10~11월)가 열립니다.
꿀사과로 알려진 영주 사과 맛보러 고고.
부처님, 남북통일은 이뤄질까요?🤝
:: 충남 천안 각원사
동생이 오색찬란 연등을 보고 싶다며 서울이나 경기도에 갈만한 사찰을 추천해달라고 합니다. 퍼뜩 생각나는 곳들이 다 멀어 고민하는 중에 ‘아!’하고 각원사가 떠올랐습니다. 경기도권은 아니지만 충남 천안은 경기도 평택, 안성과 인접한 곳으로 지하철, 버스로도 무리 없이 갈만한 곳입니다. 각원사의 첫인상은 여느 사찰과 달랐습니다. 아마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까닭에 전각의 배치나 외향이 좀 더 깔끔하고 딱 맞아떨어져 그랬을 테지요. 각원사는 6·25전쟁의 참상을 겪은 조실스님이 1975년 창건했습니다. 천안의 주산인 태조산 아래 가부좌를 틀고 계신 아주 거대한 부처님이 계시는데 1977년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봉안했습니다. 높이가 15m(앉은 높이니 일어서시면 더욱 크겠습니다), 무게 60톤으로 관욕 의식(몸을 씻는)을 거행하는 날은 진풍경을 이룹니다. 눈썹부터 턱까지 1m는 되어보이는 부처의 귓불을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닿고자 하는 도를 위해 수행하는 스님들과 갈등 없는 세상을 위해 저도 잠시 기도를 올렸습니다.
GoGo각원사에서 차로 10분 거리 천호지도 고고.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꽃송이가> 속 ‘단대호수 걷자고 꼬셔~’가 천호지랍니다.
신선의 세계가 문을 연다☔
:: 울산 석남사
몇몇 기억 속 장면은 액자 속에 꽂아둔 사진처럼 선명해서, 괜스레 속이 붉어지는 날이면 꺼내 보고 열을 식히기도 합니다. 취재를 다니며 만난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울산의 석남사도 있습니다. 울산 시내에 속하는 태화강국가정원에서 석남사는 약 30km로 먼거리입니다. 인기 많은 여행지가 아닌 것이 오히려 다행이랄까요. 태화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자 영남 알프스 9봉에서도 가장 높은 가지산에 자리해 산세가 비범합니다. 석남사의 백미는 일주문에서 경내로 이어지는 숲길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소나무는 이무기 같습니다. 하늘로 올라갈 날만 기다리며 밤낮 포효하는 이무기의 몸짓처럼 집채만 한 몸통이 하늘 향해 역동적으로 휘어져있습니다. 보슬보슬 비는 내리고, 나무로 빽빽한 숲길에는 계곡물 소리가 우렁찹니다. 산속에 계곡이, 계곡 안에 사찰의 전각이 어울렁더울렁 섞여 석남사는 얼굴 없는 가수처럼 신비롭습니다. 비 머금어 더욱 고색창연한 단청 아래로 홍자색 꽃 피운 배롱나무까지 액자 속에 꽂아둔 사진처럼 내내 선명합니다.
GoGoSRT울산역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14km는 석남사, 동쪽으로 13km에는 태화강생태관이 자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