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자에게 여행은 수학공식 같은 거죠. 잘 풀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호랑말코 같은 한 문장을 던져보는 에디터 나비입니다. 혹시 이 뉴스레터를 보시는 중에 여행기자, 여행작가를 꿈꿔본 분이 계실까요? 그렇다면 이 뉴스레터는 당신 한 사람을 위한 노래, 아니 글 되겠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날 여행기자의 자세
<SRT매거진>을 만든 지 n년차입니다만, 요새처럼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걸 본 적은 없습니다. 분명 지지난 주에는 한낮이 여름처럼 더워서 외투를 벗어던졌는데 4월 둘째 주인 오늘 이 바람은 무슨 바람인가요? 꽃샘추위라고 하기엔 좀 늦은 것 같고 안개라고 거짓말 하기엔 하늘이 너무 노랗습니다. 가끔 뒷모습, 옆모습이 지나가는 행인인 척 잡지에 등장하는 에디터이기에 취재할 때 옷차림도 3주 뒤를 예상하고 입는데요. 때아닌 추위에 하늘하고 맞짱 뜰 뻔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게 될 지면에는 굳이 이런 서사를 녹일 필요가 없지요. 에디터는 생수 한 깡을 사다가 간절한 마음속 기도를 드립니다. 제발 한 시간만 맑은 하늘을 허락해주소서. 우리 독자들에게 아름답고도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싶단 말입니다.
🙏바라고 행하고 기다려라
평소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우주는 저보다 더 착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바쁜가 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월급 받는 이유) 그저 기다리는 것, 그 과정에서 지나친 것들을 재발견하는 것. 이를테면 문 닫아서 발길을 돌린 가게의 문이 지금에서야 열리는 걸 보는 것이죠. ‘그래, 이걸 마주하려고 그런 마음 시달림을 겪은 거야.’ 불교의 연기법까지 끌어옵니다. ‘모든 현상은 독립·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설’이죠. 사계절이 스스로 짧아지고 싶어서 짧아진 게 아님을, 집구석 여행러였던 제가 꽤 긴 시간 여행기자로 살아가는 것도, 과거의 어떤 조건과 원인이 맞아 떨어서겠지요.
혹시 이 뉴스레터를 보시는 여러분 중에 새로운 꿈을 이루려는 분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지금 어떤 조건과 원인을 만들고 있는지 숙제를 내어드릴게요. 다 풀고 나면 명쾌한 길을 꿋꿋이 걸어 가시겠죠.
🙂암튼 착하게 살 것, 복 받아야지
최근 4년 만에 남원을 다녀왔어요. 5월호에 남원 이야기가 들어가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남원을 머리와 가슴에서 나름대로 재구성하고 있었더라고요.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남원은 4년 전 첫인상 때보다 왠지 쓸쓸한 무드가 있었는데, 해가 진 뒤 찾은 광한루원에서 그때는 느껴보지 못한 벅찬 감동이 밀려왔어요. 검푸른 하늘 아래 600년 세월을 간직한 광한루가 서 있고, 누각 앞에는 은하수의 물결을 상징하는 호수가 흐르고 있어요. 빗방울이 파문을 일으키는 호수에 과감한 붉은 조명이 반사되어 압도되는 기분마저 듭니다. 낮의 소란함을 삼키는 빗방울 소리, 젖어 부드러운 흙길을 걸으며 살피고, 살펴보았습니다. 신선의 세계를 담고자 한 광한루원에 나는 어떤 조건과 원인이 맞아 오게 되었을까? 600년 전 선조들이 세운 광한루원을 이전에도 봤을까? 너무 갇혀 살아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을까? 암튼 착하게 살아야겠다.